좋은 대화
쇼는 내일이었다. 옷은 아직 걸리지 않았고, 음악은 아직 울리지 않았고, 도시는 아직 아무것도 보지 못한 상태였다. 쇼 하루 전날, 나는 마티유 블라지와 마주 앉았다.
만나서 반갑다는 말로 대화를 시작했다. 사실이었다. 그가 서울에 온다는 소식을 들은 순간부터 이 시간을 기다렸다. 마티유 블라지. 샤넬에 온 지 이제 1년. 1년이면 열 개 컬렉션이라고, 그는 그 숫자를 농담처럼 흘렸지만 농담이 아니었다. 한 사람이 한 해 동안 새로운 세계를 열 번이나 그린다는 뜻이었으니까.
그가 현대 그리고 미래의 패션과 문화 전반에 얼마나 중차대한 인물인지는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샤넬의 아티스틱 디렉터, 굳이 여기에 한마디 더 하자면 가브리엘 샤넬의 영혼과 창조를 새 시대 샤넬로 오롯이 이끌 자격이 주어진.
우리가 마주 앉은 곳은 서울이었다. 어린 시절 소풍으로 한 번쯤 와봤을 63빌딩 옆, 큐비즘 전시를 내건 새 미술관 ‘퐁피두센터 한화’. 그는 뉴욕에서 선보인, 자신의 첫 번째 메티에 다르 쇼의 옷들을 이곳으로 가져왔다. 이름하여 샤넬의 또 다른 유산이 되고 있는 레플리카 쇼. 뉴욕을 커피와 강아지의 도시로 빗댄 인터뷰가 생각나 서울은 모바일폰이나 치킨, 뷰티 정도가 아닐까 싶었다.
“매우 흥미롭네요. 아시다시피 우리는 이미 뉴욕에서 쇼를 했어요. 그리고 쇼를 다시 하게 되었을 때, 서울은 몇 가지 이유로 아주 명백한 다음 행선지였죠. 이미 팀과는 이야기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제가 흥미롭다고 느낀 것은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과 문화가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에요. 음악에 관해서도, K-팝만이 아니에요. 물론 K-팝도 있지만요. 텔레비전을 보아도 한국 음식에 대한 프로그램들이 많아요. 그중 한 프로그램에 서울 밖에서 만난 굉장히 놀라운 셰프가 나왔어요. 당연히 영화도 있지요. <올드보이>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예요. <미나리>도요. 넷플릭스 쇼도 떠오르네요. 그리고 뷰티 산업에서도 많은 일이 벌어지고 있어요. 서울은 매우 흥미로운 도시입니다. 여전히 전통과 함께 살아 숨 쉬고 있거든요. 한국 문화는 매우 뿌리가 깊어요. 하지만 제 생각에 서울은 그와 동시에 미래를 향해 가는 매우 혁신적인 구석이 존재해요. 특히 저는 전후 한국에서 펼쳐진 미술을 좋아해요. 백남준이나 이우환 같은 작가들이 있지요. 저에게 서울은 매우 궁금한 도시입니다.”
더불어 서울은 AI를 둘러싼 미래의 정글이자 아트에 매혹된 갤러리의 도시다.
그 역시 쇼가 열리는 퐁피두센터 한화에 푹 빠졌다고 했다.
“프랑스에서는 아마도 이 정도 규모의 전시는 열리지 않을 거예요. 모르겠어요. 아마도 프랑스인들은 큐비즘에 대해 이미 많이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요. 그래서 오랫동안 이런 전시는 보지 못했어요. 그리고 어제 컬렉션 투어를 하다 정말 놀랐어요. 큐비즘은 전쟁 이전에 등장했지만, 미래를 예견했어요. 그야말로 미래에 대한 아이디어들이에요. 각자 다른 것을 이어 붙인 콜라주 같아요. 그리고 이것은 각기 다른 정신적 상태를 대변해요. 저는 이것을 사유의 지형Mindscape이라고 부르고 싶어요. 한국의 문화나 예술가들과 굳이 연결 짓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미래를 디자인한다는 관점에서 말이에요. 예를 들어 백남준의 작품을 보았을 때, 기술에 대한 접근과 표현 방식, 이미지의 포화, 그리고 텔레비전 스크린에 계속해서 더해지는 것이 있어요. 흥미진진하지요. 새로운 미술관이라는 맥락에서 쇼를 보는 것도 흥미롭고요. 제 말은, 문화/창조에 관해서는 절대 틀릴 수 없다는 것이에요. 그 무엇이 되었든 말이에요.”
퐁피두센터에 대해, 프랑스에서는 더 이상 보기 어려운 큐비즘 전시에 대해 그는 한참을 이야기했다. 그러고는 큐비즘이라는 단어에서 잠시 멈췄다.
“Cubism arrived before the war, but it predicted the future.”
큐비즘은 전쟁 이전에 등장했지만, 미래를 예견했다.
과거가 미래를 먼저 본다. 그는 그것을 ‘사유의 지형’이라 불렀다. 각기 다른 것을 이어 붙인 콜라주. 각기 다른 정신 상태가 한 화면 위에 포개진 풍경. 백남준의 화면, 기술에 대한 접근, 이미지의 포화, 스크린 위에 끝없이 더해지는 것을 떠올리며 그는 어쩌면 자기만 보는 연결 고리일지 모른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 연결을 함께 보았다. 전통 속에 살아 숨 쉬면서 동시에 미래로 달려가는 도시. 그것이 그가 본 서울이었고, 내가 매일 보는 서울이었다.
뉴욕의 쇼는 지하철에서 열렸다. 위계가 없는 풍경. 삶의 다른 단계에 놓인 사람들이 그저 스쳐 만나는 곳. 서울에서 그는 갤러리를 택했다. 누구나 아름다움을 보러 올 수 있는 곳. 손주와 함께 온 할머니, 사업가, 학생, 학자, 예술가, 펑크족. 뉴욕이 모두가 만나는 곳이었다면, 이곳은 모두가 아름다운 무언가를 바라보는 곳이라고 그는 말했다.
“제가 샤넬에 왔을 때, 샤넬 여성에 대한 이미지는 매우 특정한 틀에 갇혀 있는 느낌이었어요. 마치 유니폼 같았달까요. 어떤 점에서는 좋아요. 하지만 저는 조금 더 색다른 이야기와 더 많은 ‘여성들’을 더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여성’ 말고 다양성을 가진 ‘여성들’이요. 저는 그것을 무척 좋아해요. 예를 들어 영화 <디 아워스The Hours>를 보면 각기 다른 여성들과 그들의 삶이 교차하는 것을 볼 수 있어요. 저는 일종의 풍경으로서 뉴욕의 지하철이 아름답다고 생각했어요. 삶의 다양한 단계에 놓인 각양각색의 사람이 만나니까요. 그곳에는 어떤 계층도, 위계질서도 존재하지 않아요. 갤러리도 조금은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누구나 예술을 감상할 수 있지요. 손주들과 함께 온 할머니를 만날 수도 있고, 여성 사업가나 학생들을 만날 수도 있어요. 학자나 예술가, 그리고 펑크족도요. 이런 공간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에요. 따라서 뉴욕의 지하철은 모두가 여행을 떠나는 곳이에요. 반면에 이 갤러리는 누구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고요. 이것이 이야기입니다. 물론 서울 지하철에서도 쇼를 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그 쇼는 이미 끝났다고 생각했어요.”
마티유 블라지는 훌륭한 스토리텔러다. 서로 다른 시대를 하이브리드하게 엮어 모든 캐릭터를 생동감 있게 숨 쉬게 만든다. 뉴욕의 공방 컬렉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각 시대를 어떻게 섞느냐고 물었다. 1970년대부터 심지어 가브리엘 샤넬의 1920년대까지. 그는 어느 시대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답했다.
“저는 오늘날의 세상을 가장 많이 반영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열두 살짜리 조카를 데리러 학교에 간 적이 있어요. 마침 수업을 보던 중 대화를 나누게 되었지요. 빈티지를 좋아한다더군요. 요즘 사람들을 보면 빈티지가 우리 문화의 한 축이 되었구나 느껴요. 1980년대 옷을 입을 수도 있고, 1950년대 옷을 입을 수도 있지요. 제 생각에 특정 시대의 스타일이라는 개념이 사라지는 것 같아요. 모든 것은 함께 공존할 수 있어요. 따라서 스타일을 특정 시대의 것으로 규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저는 <더 코케츠The Cockettes>라는 다큐멘터리에 매우 매료되었는데요. 1970년대 샌프란시스코 히피들이에요. 그들은 밴드 활동을 했는데, 정말 놀라워요. 진짜 빈티지를 입은 이들 중 하나였거든요. 그러니까 1970년대에 모든 옷을 1940년대 이전의 옷으로 입었어요. 그러고는 놀라운 존재들이 되었죠. 따라서 시대를 구분하는 것은 저에게 중요하지 않아요. 각기 다른 시대에서 빌리고 해석하는 것이지요.”
Artwork credits:
© Adagp, Paris, 2026 ; © Suzanne Duchamp / ADAGP, Paris, 2026 ; © F.L.C. / Adagp, Paris, 2026 ; © Fondation Foujita / Adagp, Paris, 2026 ; © Maison-atelier Lurçat / Adagp, Paris, 2026 ; © Jacques Villon / ADAGP, Paris, 2026 ; Droit moral Galerie Chave ; Autorisation de Mme Jean exécutrice testamentaire ; © Succession Picasso 2026 ; © Pracusa 20260525 ; © Association Alfred Reth Photos
“The decades for me, they’re not so important. You can just borrow and then translate.”
나에게 시대 구분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저 빌리고, 번역하면 된다.
바지와 1990년대 신발이 한 사람이 입고 있는 시대. 특정 시대의 스타일이라는 개념 자체가 지워지고 있다고. 빌리고, 번역한다. 그 말이 오래 남았다. 시대를 소유하지 않고 통과시키는 사람의 어법이었다.
그 많은 역사 속에서 어떻게 하나의 명료한 비전을 길어 올릴 수 있는가. 너무 많지 않은가.
“맞아요. 거기에는 두 가지가 있어요. 작업과 직감이요. 당연히 프레임이 있습니다. 프레임은 곧 샤넬이에요. 역사이고요. 가브리엘(가브리엘 샤넬)과 칼(칼 라거펠트)과 버지니(버지니 비아르)의 이야기이고요. 하지만 기획할 때는 진정성이 느껴질 수 있는 무언가를 제안하려고 해요. 따라서 스스로 이해하는 것, 저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 그리고 흥미롭다고 여기는 것을 보여 주려고 합니다. 디자인팀과 함께이기에 우리는 매우 정직하게 제안하려고 노력해요. 마치 연금술 같지요. 그럼에도 이것이 통해요. 예를 들어 내일 당신이 나에게 ‘이 안경에 대한 컬렉션을 만들어줄 수 있나요?’라고 말한다고 해봅시다. 어쩌면 나는 괜찮은 컬렉션을 만들어낼 수도 있어요. 하지만 당신이 그림을 고르고, 우리가 패브릭을 만드는 동안 나는 그것들에 대한 직감이 와요. 그 직감들을 사랑해요. 가끔 나는 패브릭을 정말 싫어하기 때문에 사랑해요. 나는 그게 매우 흥미롭다고 생각해요. 이것으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것은 지속적인 작업 과정과 같아요. 당연히 모델들과 함께하는 일도 있지요. 우리는 이제 그들을 알아요. 몇몇은 친구이고요. 메종의 장인들 — 르마리에Lemarié, 르사주Lesage, 몽텍스Montex 까지, 우리는 함께 이야기를 전달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모든 재료를 준비해요. 결국 제 일은 그것들을 하나로 모아 진실되고 솔직하면서도, 어쩌면 즐겁고 새로울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정말 연금술이 따로 없지요.”
그는 두 가지라고 했다. 작업, 그리고 직감. 프레임은 샤넬이다. 그 프레임 안에서 그는 진짜라고 느껴지는 것만 꺼낸다. 스스로 이해하는 것,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것, 흥미롭다고 여기는 것. 때로는 어떤 패브릭은 정말 싫어서 사랑한다고 했다. 이것으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거기서 시작되니까. 그리고 그는 결코 혼자 하지 않는다.
“Me, I can dream. I love techniques. But you can never do it alone.”
나는 꿈을 꿀 수 있다. 나는 기술을 사랑한다. 하지만 절대 혼자서는 할 수 없다.
나는 그에게 ‘혼魂’이라는 한국어 단어를 건넸다. 정신과 전통과 유산, 그 모든 것을 품는 말. 메티에 다르, 공방 컬렉션은 샤넬의 본질을 살아 숨 쉬게 하는 방법을 이해하는 장인들과의 섬세한 협업을 통해 비로소 완성된다.
“맞아요. 마치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시스템과 같아요. 각기 다른 분야의 장인들이 함께 작업했어요. 마치 바우하우스 시스템 같기도 하군요. 각자 다른 아이디어, 자신만의 돌을 테이블에 올려놓는 겁니다. 하지만 결국 중요한 건 공통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에요. 공방 컬렉션은 샤넬만의 독특하고 특별한 프로젝트예요. 기성복이지만 적용하는 기술은 그렇지 않거든요. 컬렉션을 구성하는 다양한 방식이 있어요. 각기 다른 장인은 저마다 다른 노하우와 접근 방식을 선보입니다. 어떤 이는 매우 전통적인 기술을 구사하는데, 매우 훌륭해요. 너무 탁월해 굳이 변화가 필요가 없지요. 유리를 새롭게 만들 필요가 없는 것처럼요. 이미 완벽하니까요. ‘르사주Lesage’의 자수와 트위드가 그 좋은 예예요. 반면 ‘몽텍스’처럼 자수의 경계를 끊임없이 밀어붙이는 장인도 있습니다. 그리고 ‘르마리에’가 그 중간에 있지요. ‘마사로Massaro’는 조금 더 전통적이에요. 하지만 가장 흥미로운 점은 그들에게 함께 작업하도록 했을 때, 서로 다른 노하우를 대비시킬 때 비로소 멋진 결과물이 나온다는 사실이에요. 저는 새로운 도전을 받지만 동시에 그들에게 도전하기도 합니다. ‘불가능하다’는 말을 들을 때, 저는 매우 기뻐요. 왜냐하면 그것은 훌륭한 대화의 주제가 되거든요. 그들과 대화할 때는 매우 겸손해져야 해요. 그들은 저에게 없는 노하우와 전문 기술을 가졌거든요. 저는 꿈만 꿀 수 있지요. 저 역시 기술을 좋아하지만 절대 혼자 할 수는 없어요. 정말 멋진 일이에요. 그럼에도 결코 쉽지는 않아요. 모든 것이 가능하기는 하지만요. 때로 어떤 장인은 너무 혁신적인 해결책을 제시해 결정이 저절로 내려지는 순간도 있어요. 그럼에도 모두 결과물에 동의해요.”
각기 다른 장인들이 각자의 무언가를 테이블에 가져와 결국 하나의 공통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 르사주, 몽텍스, 르마리에, 마사로. 장인들이 ‘불가능하다’고 말할 때, 그 순간이 가장 기쁘다고 했다. 그 말이 좋은 대화의 출발점이기 때문에. 장인들 앞에서는 겸손해져야 한다고, 장인들은 자신에게 없는 노하우와 기술을 가졌다고. 공방은 꿈을 꾸고, 장인들은 그 꿈을 손으로 구현한다. 혼은 아마 그 사이 어딘가에 내재돼 있었을 것이다.
분위기를 전환해 사운드트랙에 대해 물었다. 뉴욕 쇼에서 보여 준 그 심금을 울린 음악들.
“음악은 똑같아요. 처음에는 바꾸고 싶었지만 그러고 나니 컬렉션을 알아볼 수 없었어요. 공방 쇼의 음악은 모두 제가 좋아하는 곡들을 섞어서 만들었어요. 르 모텔Le Motel, 미셸 고베르Michel Gaubert와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들이 저에게 어떤 곡을 원하는지 묻더군요. 저는 ‘이미 완성했어요. 바로 이것을 원해요’라고 했지요. 그렇게 합쳤어요. 영화 음악들, 나탈리 임브루글리아Natalie Imbruglia, 아리 업Ari Up, 어떤 시대의 음악이든요. 다시 말하지만, 마치 사유의 지형과 같지요. 일종의 우주를 만들어내는 거예요. 서울에 맞춰 음악을 바꾸려고 했을 때, 더 이상 알아볼 수 없었어요. 저는 쇼 장소를 바꿀 수 있어요. 모델을 바꿀 수도 있지요. 하지만 제가 절대 바꾸지 않는 두 가지가 있어요. 의상과 음악. 마치 향수를 바꾼 누군가를 만나는 것과 같아요. 좋은 향이 나기는 하지만 원래 느낌과는 다르잖아요.”
서울에는 샤넬을 사랑하고 마티유 블라지를 지지하는 수많은 예술인이 숨 쉬고 있다.
“우선 모두와의 만남이 너무 기대돼요. 파티에서 기자, 고객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해요. 가끔 피드백을 주거든요. 하지만 그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옷을 입은 모습을 보는 것도 좋아요. 단순히 옷 전체를 보는 것은 아니에요. 예를 들어 누군가 이런 스커트에 컬렉션 스웨터 혹은 컬렉션 바지를 매치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저는 컬렉션을 만드는 일을 하지만 그것들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소화하는 것은 고객들의 몫이니까요. 한국은 무언가 활기찬 분위기로 유명하잖아요. 내일 파티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죠. 당연히 조금은 긴장되지요. 모든 것이 잘되기를 바라니까요. 저는 항상 말하는데, 제 역할은 요리사와 같아요. 재료들을 준비하고, 모든 것을 갖춰 두지요. 마치 요리를 손님들에게 서빙하는 것과 같아요. 그들이 좋아하기를, 좋은 시간을 보내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담배도 한 대 피우고, 술도 한잔하고, 멋진 저녁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지요.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나길 바라는 것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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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ccession Picasso 2026
좋은 패션이란 무엇인가. 패션이 어렵고 지치고 복잡한 산업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묻는다.
“의도가 먼저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어쩌면 옷은 그냥 옷일 뿐이니까요. 좋은 패션을 만드는 것은 아이디어예요. 의도, 즉 당신이 누군가와 소통하고 싶어 하는 ‘무엇’이요. 혹은 옷을 입는 사람들이 옷을 통해 무엇인가를 표현하고 싶어 할 수도 있지요. 그리고 의도란 내가 옷을 입어야지, 옷이 나를 입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에요. 당신이 원한다면 상관없지만요. 레이디 가가를 보면 가끔은 너무 과해 보이지만, 그러다 멋지게 변하잖아요.
마지막으로 시간의 흐름이 중요해요. 유행이 지난 옷이라도 자녀나 친구에게 물려주고 싶을 때가 있지 않나요? 혹은 간직하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저는 할아버지가 평생 입으셨던 샤르베Charvet 셔츠를 물려받았어요. 완전히 망가졌지요. 더 이상 입을 수는 없어요. 완전히 다 해어져서. 그런데 왜 이 옷이 좋은 걸까요? 할아버지가 일평생 입으셨으니까요. 그 셔츠를 지금도 가지고 있어요. 제가 그걸 버릴까요? 아니요. 가치가 있거든요. 이런 것이 좋은 디자인을 만든다고 생각해요. 기능, 픽션 그리고 아이디어요.”
“This is what makes a good design. Function, fiction and ideas.”
좋은 디자인을 만드는 것. 기능, 픽션, 그리고 아이디어.
그는 뉴욕 쇼를 통해 평등과 자유에 주목했다.
“저에게 샤넬의 근본은 옷을 디자인하고 스스로 먼저 입어본 다음, 다른 여성들에게 선보이는 여성 디자이너의 정신이에요. 제가 흥미롭게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계층에 대해 논할 때, 가브리엘은 노동자 계층의 옷을 빌려왔다는 것이에요. 재봉사의 옷, 카페 노동자의 옷을 귀족을 위한 옷으로 새로운 맥락을 만든 거예요. 이것은 매우 흥미로운 지점인데, 왜냐하면 가브리엘의 초기 패션 디자인은 계층 구조 자체를 지워버렸기 때문입니다. 정말 놀랍고 현대적인 발상이지요. 저에게 샤넬의 두 번째 핵심은 움직임이 많은 사람들을 위해 디자인한다는 것입니다. 가브리엘의 옷은 여성들이 직업을 갖고 아이를 키우면서 바쁘게 움직이는 것이 가능하게 했어요. 여성이었기 때문에 결정되는 사회적 지위로부터 여성들을 해방시킨 겁니다. 단지 여성의 옷에 남성의 것과 같은 기능을 부여했을 뿐이지요.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사람이 아침에 출근하며 샤넬을 입지는 않지만, 티셔츠나 정장 혹은 바지를 입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가브리엘이 패션에 가져온 근본적인 가치를 생각하게 됩니다. 엄청나지요. 우아.”
가브리엘 샤넬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의 목소리가 가장 단단해졌다. 옷을 디자인하고, 스스로 먼저 입어보고, 그다음 여성들에게 건넨 사람. 노동자 계급의 옷, 재봉사의 옷, 카페 노동자의 옷을 귀족의 옷으로 새로운 맥락을 만든 사람. 그렇게 가브리엘의 초기 패션은 계급의 위계 자체를 지워버렸다. 그러고는 움직여야 하는 사람을 위해 옷을 지었다. 가브리엘은 여성의 지위를 남성과 동등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옷을 통해 동등한 기능을 부여했다. 오늘 아침 출근하기 위해 티셔츠를, 정장을, 바지를 입는 모든 여성은 가브리엘이 패션에 불러온 그 근본을 매일 다시 비춘다.
대화의 끝에서 그는 가브리엘 샤넬에게 왜 그렇게 집중하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고 했다. 집중이 아니라고, 그는 말했다. 어디서 시작했는지를 알아야 어디로 갈지를 알 수 있을 뿐이라고. 일종의 퀘스트라고.
“지금 샤넬에서의 첫 해를 마무리하고 있어요. 1년이면 열 개 컬렉션입니다. 꽤 많지요. 기자들을 만나면 ‘왜 가브리엘에게 그렇게 집중하시나요?’라는 질문을 자주 받아요. 제가 가브리엘에게 집중하는 것은 아니에요. 연구를 위해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알아야 하기 때문이에요. 어디서 시작할지를 알면 어디로 가야 할지를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일종의 퀘스트 같은 것입니다. 과거를 파고들어 미래를 여는 것이지요. 하지만 저는 언젠가 샤넬에서 새로운 코드를 만들어 칼의 작업도 탐구하고, 또 다른 미래를 써 내려가기를 기대합니다. 과거 이야기가 아니라, 가능성에 관한 것이에요. 백남준을 다시 보면, 예술가로서 하나의 세계를 창조했어요. 하지만 여전히 전통적인 무언가에 뿌리를 두고 있어요. 동양에는 훌륭한 예술가가 많아요. 그리고 신세대 예술가들은 어디에나 있지요. 정말로 크게 부상하고 있어요.”
“You dig into the past to unlock the future.”
과거를 탐구해 미래를 연다.
언젠가 샤넬에서 새로운 코드를 만들고, 칼 라거펠트를 탐구하고, 과거가 아닌 가능성에 대한 또 다른 미래를 써 내려가고 싶다고 그는 말했다. 다시 백남준으로 돌아가 한 예술가가 어떻게 하나의 세계를 통째로 창조했는지. 동양에는 전통에 발을 딛고 있는 놀라운 예술가들이 있고, 새로운 세대는 어디에나 있으며, 그들은 지금 정말로 부상하고 있다고.
좋은 대화는 그런 것이었다. 한 사람의 과거를 듣다 보면, 어느새 모두의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
“When it’s about culture, it can never be wrong.”
문화에 관한 일이라면 그것은 결코 틀릴 수 없다.
마티유 블라지의 말이다. 그의 비전과 인격, 그것을 직접 마주한 경험. 문화는 그렇게, 한 사람과 한 사람 사이에서 만들어진다. 그것이 샤넬이다.
그러므로 누구에게나, 샤넬은 있다.